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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피에르 로랑 에마르
다양한 정체성으로 무장한 음악
프랑스를 넘어 세계인의 공통언어 음악으로 이 세상을 돌아보다
피에르 로랑 에마르(1957~)는 오늘날 대표적인 현대음악 피아니스트로 첫 손에 꼽힌다. 그의 스승 중에는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의 부인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이본 로리오(1924~2010)가 있으며, 16세에 파리 음악원에서 실내악상을 수상했다. 20세의 나이에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1925~2016)로부터 세계 정상의 현대음악 단체 중 하나인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의 창단 멤버로 초청되었다. 이후 그는 최고의 현대음악 전문 피아니스트로 활약했으며, 이 타이틀은 60대 중반을 넘은 현재도 유효하다. 그는 현대음악뿐만 아니라 바흐부터 라벨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연주하고 녹음했으며, 피아니스트가 아닌 음악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지휘의 영역에도 도전하고 있다. 올해 4월 19일과 20일에 내한하여 서울시향과 함께 죄르지 리게티(1923~2006)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할 예정인 그와 간단히 대화를 나눴다.
불과 20세에 현대음악 전문 단체인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이하 앵테르콩탱포랭)의 창단 멤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 이전부터 현대음악에 특출한 성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통 레퍼토리가 아닌 현대음악에 초점을 두고 활동을 시작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나의 첫 선생님은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의 음악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10대 소년이었던 저는 살아있는 창작자들의 음악을 공부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고, 우리 시대의 증인이 되는 것이 해석자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여겼습니다. 음악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함으로써 과거의 음악도 새로운 시각으로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앵테르콩탱포랭에서의 활동은 이후 당신에게 음악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쳤나요?
앙상블에 입단하면서부터 당시 가장 뛰어난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죠. 그 첫 인물이 바로 지휘자이자 작곡가 불레즈였습니다. 또한 다양한 작품을 만나며 더욱 넓은 무대에서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작곡가를 만났을 텐데, 그중 당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음악가는 누구였나요?
1969년부터 올리비에 메시앙, 1976년부터 피에르 불레즈와 가까이 지낸 것은 굉장한 특권이었습니다. 덕분에 30년 동안 파리의 음악적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12년과 2016년 내한 공연에서는 프랑스 작곡가 메시앙, 헝가리 작곡가 쿠르탁과 리게티, 스위스 출신의 하인츠 홀리거 등의 작품을 연주했었죠. 어떤 기준으로 작품들을 선택하여 프로그램을 구성하는지 궁금합니다.
관객이 경험하는 음악과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작품을 선정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은 제게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저의 경우, 연주하는 장소에 따라 곡을 선정합니다. 감상자들의 생각을 자극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죠.
작곡가과 함께 호흡하는 특권
이번 내한에서는 서울시향과 함께 리게티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합니다. 한국에서는 리게티의 연습곡 음반으로 당신을 기억하는 관객이 많은데요, 리게티의 음악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20년 동안 리게티와 함께하며 그의 곡을 연주한 경험은 저의 예술적 토양이 되었습니다. 그의 모든 새로운 작품과 녹음을 도맡아 했을 정도로 훌륭한 창작자의 신뢰를 얻었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자 책임입니다.
연주를 통해 느끼는 리게티 작품의 음악적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리게티의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선 까다로운 연습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의 놀라운 장인정신과 폭넓은 상상력, 저항할 수 없는 환상, 자유와 비범한 개인의 주체성을 음악으로 만나다 보면, 노력의 매 순간은 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바흐·모차르트·베토벤·리스트·슈만·드뷔시·라벨 등의 연주와 녹음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 음반들을 통해 당신을 알게 된 한국의 많은 애호가도 있습니다. 시대를 아우르는 연주가 늘 인상 깊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은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는가?”입니다. 음악은 이 질문에 창의적인 방법으로 답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렇기에 항상 새로운 여러 시도를 통해 연주가 반복(Routine)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매일 새로움으로 채운 삶을 사는 것은, 끊임없이 흐르는 샘과 같죠.
다양한 현대음악 천천히 곱씹기
많은 사람이 현대음악을 어려워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 작곡가들 사이에서는 대중의 이해도를 고려한 작품들을 발표하는 경향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이기도 하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사회의 요구에 대한 예술가의 타협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대중과 소통 가능성이 넓은 조성 음악 시대(바로크·고전·낭만주의)의 작품들이 가장 높게 평가 받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가 역사의 중요한 변화가 있었던 모든 시기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 시기 전후에 있었던 위대한 실험과 시도가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음악과 그 이전 시대 음악의 균형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끼나요?
조성 음악의 종말 이래, 즉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언어와 매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작품에 반영하고 있지만, 이러한 문화적 개방성은 때론 개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엄청난 다양성을 흡수하도록 더 많은 것을 대중에게 요구하게 되니까요. 이러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행복에 대한 유혹은 대단히 크고, 예술가를 향한 상업적 선동의 위험은 우려스러울 정도입니다. 이는 정치에서 다양한 문화를 고려한 공약보다 포퓰리즘적인 발언이 더 매력적으로 들리는 것과 같죠.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시향
PERFORMANCE INFORMATION
데이비드 로버트슨/서울시향(협연 피에르 로랑 에마르)
4월 19·20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드뷔시 ‘영상’ L122, 리게티 피아노 협주곡, 라벨 ‘스페인 랩소디’
서울시향과 협연할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죄르지 리게티는 누구?
루마니아 중부의 소도시 트르너베니 출신인 죄르지 리게티(1923~2006)는 1945년에 학업을 위해 부다페스트로 이주한 이후, 지역적 특색이 강한 음악과 ‘무지카 리체르카타’(1953)와 같은 실험적인 음악을 병행하며 작곡가의 길을 모색했다. 그러다 헝가리가 공산화되자 1956년에 빈으로 망명했고,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전자음악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이듬해에 슈톡하우젠, 아이머트 등이 있었던 쾰른으로 옮겼다.
하지만 몇 작품을 만들어본 후 전자음악에서 얻은 음향적 사고를 어쿠스틱 음악에 구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든 ‘대기’(1961) 등은 음악계의 흐름을 변화시킬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각 악기들이 미세한 차이로 다르게 연주하여 ‘마이크로폴리포니’ 양식으로 불렸는데, 마치 거대한 새 떼가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움직이듯 개별적이지만 소리 덩어리를 형성하여 휩쓸려 움직이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음향작곡’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여기에는 당시 주목을 받고 있었던 전음렬음악과 우연음악에 대한 비판이 부연되었는데, 즉 음악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들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를 통해 그의 음악이 새로운 음악 운동으로 인식된 것도 관심을 끄는 데 한몫했다.
이후 미분음과 폴리리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콘론 낸캐로우(1912~1997)의 자동피아노 음악과 중앙아메리카 및 중앙아프리카의 음악에서 확신을 얻어 피아노 연습곡 1권(1985)과 피아노 협주곡(1985~1988)을 연이어 내놓았다. 이후 서로 다른 리듬, 서로 다른 박자, 서로 다른 속도를 갖는 성부들의 동시적 진행과 자연스러운 미분음을 통한 음향 공간의 확장이 리게티 음악의 특징이 되었다. 송주호
피에르 로랑 에마르의 리게티 피아노 협주곡 음반들
나의 스승 피에르 로랑 에마르/피아니스트 문종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문종인(1984~)은 독일 쾰른 음대에서 피에르 로랑 에마르에게 현대음악 피아노 연주(석사과정)를 수학했다. 현재 현대음악 앙상블 TIMF앙상블의 프로그래밍 디렉터이자 스톰프뮤직 상임편곡자인 그는 한국과 독일에서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 그가 스승에 대한 단상을 풀어냈다.
스승 에마르 작곡을 공부하던 때에는 현대음악 악보에 쓰인 ‘피아니스트 에마르에게 헌정함’이라는 문구를 종종 볼 수 있었는데요. 작곡가의 곡을 초연하고 녹음한 음반들을 들으며 공부할 때에는 그저 다른 세상의 사람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뵙게 되었을 때는, 굉장히 나긋나긋한 말투의 친절하신 분이셨어요. 물론 수업 시간에는 부드러운 말투 속에 엄격함과 냉철함을 보이시기도 하셨죠.
가르침과 강조한 것 “악보 어디에 다른 내용이 적혀 있나요?”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기본적으로 작곡가가 선호하는 해석 스타일이 이미 있거나, 특별한 지시가 언급되어있지 않은 이상, 악보에 적혀있지 않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그것이 효과적이더라도) 주의를 주는 스타일이었어요. 덕분에 본질적인 소리와 진행을 고민하고 만들어 내는 연습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많은 연주 활동으로 바쁘셔서, 학생들은 선생님의 연주 일정을 보며 쾰른에서는 언제쯤 수업을 하실 수 있을지 궁금해하며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하루는 학교가 문을 닫은 날에 오셨는데, 그래서 쾰른 인근인 본에서 제자 부모님의 양해를 구하고 그 제자 집에 모여 레슨을 했습니다. 마스터클래스 형식의 긴 수업을 마치고 장소를 제공해준 제자의 어머니께서 준비해주신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다음 일정으로 바쁘셨기에 급히 식사를 마치셔야 했죠. 약간 헝클어진 머리로 캐리어를 끌고 거친 돌길을 힘겹게 뛰어가시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TIMF앙상블의 프로그래밍 디렉터인 지금 프로그램 기획은 연주와는 또 다른 영역이지만, 작곡가나 지휘자가 없을 때에는 종종 연주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연주자에게 하게 됩니다. 그럴 때 선생님의 수업을 통해 훈련했던 여러 가지가 도움이 되는데요. 복잡한 소리들도 다층적으로 분류하고 조합하여 들리도록 하는 연습이라던가, 또 악보에 기보되어 있지 않지만, 연주 효과를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과장되게 연주하는 것을 가능한 피하며 악보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정리 임원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