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MUSIC SCENE 36
세계의 예술경영인을 만나다
음악을 통해 공공과 소통하는 방송교향악단
쾰른 WDR 심포니 대표 제바스티안 쾨니히

제바스티안 쾨니히(1974~)는 브레멘 대학·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음악학을 공부했다.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 오페라 드라마투르기로 활동했으며, 2004~2007년 베를린 노이쾰른 오페라의 경영 책임자로 재직했다. 이후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에서 근무했으며, 2020년부터 쾰른 WDR 심포니의 대표를 맡고 있다.

쾰른 WDR 심포니 ©Peter Adamik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쾰른은, 도시라기보다 잔해에 가까웠다. 전쟁 중 영국 공군이 약 1천 대의 폭격기를 투입한 작전으로 로마 제국 시절부터 이어온 쾰른의 역사가 심각한 파괴를 겪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후, 쾰른은 음악과 매체를 도시 정체성의 중심에 두며 재건을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 독일을 대표하는 미디어 도시로 성장했고, 독일 공영방송 연합(ARD)의 중추인 서부독일방송공사(Westdeutscher Rundfunk/WDR)와 민영방송 그룹 RTL의 본사가 있는 도시가 됐다(RTL은 ‘라디오 텔레비전 룩셈부르크’의 약자로, 출발은 룩셈부르크 방송이었지만 지금은 범유럽 미디어 그룹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쾰른 WDR 심포니는 음악으로 안정을 찾은 도시답게 폐허 속 살아남은 대성당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쾰른 WDR 심포니의 대표를 화상으로 만났다. 그는 ‘방송교향악단’의 개념, 즉 연주하고 기록하며, 사회로 전파하는 음악이 어떻게 독일의 공공성과 함께 형성되어 왔는지를 차분하고 논리적인 언어로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날의 대화는 단순히 한 교향악단의 운영 이야기를 넘어, 독일이 음악과 미디어를 통해 어떤 공통의 가치와 문화적 책임을 구축해 왔는지를 다루고 있었다.
이성과 감정 사이의 음악 경영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는데, 교향악단 경영 업무를 한 계기는 무엇인가?
예술은 늘 내 삶의 중심에 있었다. 어린 시절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합창단원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법학을 전공했지만, 늘 음악과 아주 가까이 있었다. 무대 특유의 공기와 에너지가 나를 강하게 끌어들였던 것일까. 법률 실무를 하기보단 문화예술 경영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이후에는 음악학도 공부했다.
법은 논리적 체계가 중심이고, 음악은 감정적인 영역이다. 상반된 영역을 업무에서 어떻게 연결하나?
공연을 볼 때 깊이 느끼지만, 경영은 전혀 다른 비예술적 논리도 요구한다. 교향악단과 관객이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해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법학을 통해 익힌 현실적이고 구조적인 사고는 음악 경영 전반에 도움이 되었다.
조심스러운 질문일 수도 있지만, 경영진과 연주자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때론 연주자들이 경영진을 비전문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프로그램 구성 및 초청 아티스트 선정 등 예술적 비전 전반에 꾸준한 성장을 만들어왔고, 그 과정에서 서로 간에 깊은 신뢰가 형성됐다. 연주자들은 내가 전문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나 또한 그들이 최고의 연주를 펼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경영가와 연주자는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다.
방송교향악단의 공공성과 예술성
쾰른 WDR 심포니는 방송국 산하의 교향악단이다. 설립된 과정이 궁금하다.
독일은 연방국이고, 지역마다 공영방송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이 체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군에 의해 도입되었고,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같은 정보 과잉 시대일수록 문화예술, 특히 음악은 시민의 기본적 필요에 속하며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쾰른 WDR 심포니는 1947년 정식으로 창단됐다. 당시 사회는 피폐했고, 음악이 절실히 필요했다. 음악을 각 가정으로 전달할 거의 유일한 매체가 라디오였다. 초기엔 오페라·교향곡을 생방송으로 송출했고, 이후 레퍼토리를 꾸준히 넓혀왔다. 연주를 녹음해 방송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음원 아카이브가 축적되어 주요 자산이 됐다. 특히 창단 초기부터 기획한 현대음악 시리즈는 지금은 고전이 된 당시 동시대 음악, 스트라빈스키·버르토크와 같은 작곡가들을 다루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엔 인터넷 등 다양한 유통망이 등장한 환경에 맞춰, 전달 방식 또한 진화하고 있다.
재정 운영 방식은 어떻게 되나? 방송국 산하라는 점이 미치는 영향이 있는가?
방송사로부터 거의 전액에 가까운 재정 지원을 받는다. 다만 일부 비용은 자체 수입으로 충당한다. 방송사는 우리의 예술적 판단을 존중하며, 단체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매우 전통적 방식이지만, 이는 독일 공영 방송 시스템을 지탱해 온 핵심 원칙이기도 하다. 물론 예산 규모를 둘러싼 논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산을 지원한다고 하여 정부가 “베토벤 대신 브루크너를 연주하라”고 지시하는 식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방송교향악단의 연주는 실연 외에 매체로 송출되는 범위가 넓어, 지휘자나 독주자, 미디어 간의 권리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핵심 쟁점이다.
방송교향악단의 권리 이슈에서 가장 큰 쟁점은, 저작권 자체보다 시청각 자료에 대한 미디어 권리다. 방송사가 연주자와 지휘자의 권리를 어떤 범주로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협상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투입된다. 청취자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 기관인 만큼, 독일 내 공공 영역에서 우리의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 계약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균형을 만들어 나가나?
독주자의 경우 한 시즌에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제한적이고, 같은 시즌에 여러 오케스트라와 동일 작품을 연주하는 일도 흔하다. 이런 상황에 특정 공연에 대해 독점적 영상 기록을 요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일 수 있다. 독주자·오케스트라·방송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하고, 단순 법률 문항의 합의가 아닌 오랜 협상 경험과 현장 이해가 결합해야만 가능한 영역이다. 우리는 관객을 위해 연주한다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지휘자는 독주자에 비해 원활한 편이지만, 계약의 핵심은 결국 ‘무엇을,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록할 것인가’에 있다. 일부 지휘자들은 이 기록 방식과 활용 범위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 과정에서도 카메라 리허설-총리허설-본공연을 단계적으로 기록해 편집 여지를 충분히 확보하고, 예기치 못한 문제도 공연 자체를 무효로 하기보다 편집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계획한다. 결국 협상의 핵심은 일방적 권리 확보가 아니라, 결과물을 함께 만든다는 전제 위에 신뢰를 바탕으로 범위와 조건을 상호 조율해 가는 데에 있다.
방대한 유산을 미래 도약의 자산으로!

ARD 클래식 유튜브
디지털 미디어 내에서 공개 범위는 어떻게 설계되나?
디지털 채널 운영은 플랫폼의 성격에 따라 구분된다. 유튜브는 주로 하이라이트 연주를 중심으로, 페이스북은 때에 따라 라이브 스트리밍을 진행한다. 기존 방송을 대체하기보단 이를 보완하는 부가적 서비스에 가깝다. 모든 콘텐츠가 부분 공개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공연 성격에 따라 전곡을 온전히 공개하기도 하는데, 여기엔 ‘공공 서비스’라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공연 일부만을 공개하는 것은 단순 축약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음악적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하나의 ‘만화경’처럼 제시하기 위함이다.
아카이브 구축에 대해 단기 및 장기적 관점은 어떻게 다른가?
현장 관객과의 관계 형성과 정기 연주 시리즈의 축적, 교향악단의 예술적 성장은 장기적 관점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반면 라디오·오디오 채널, 소셜 미디어, TV와 같은 매체는 즉각적 반응과 확산을 전제로 단기적 호흡에 맞춰 운영된다. 모든 공연은 오디오로 기록되며, 이 가운데 70~80%는 영상 촬영도 진행된다.
그간 축적된 아카이브가 방대할 텐데 새로운 음반을 기획할 때 과거의 기록이 부담되진 않는가?
방대한 아카이브는 부담이 아닌 자산이다. 새로운 녹음을 기획할 때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왜 이 작품이며, 왜 이 지휘자와 함께여야 하는가’. 최근 6년간 수석 지휘를 맡았던 크리스티안 마첼라루와는 많은 작품을 녹음했지만, 라흐마니노프의 관현악 작품 전곡을 녹음한 것이 특별하다. 그의 예술적 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나는 시점에 반드시 남겨야 할 음악을 선택한 결과였다. 아카이브는 단순 과거의 기록이 아닌 큐레이션이며, 현재와 미래의 예술적 선택을 안내하는 기준점이다.
기술의 발전, 특히 AI와 같은 새로운 도구가 가져온 음악 환경 변화는 어떻게 활용하는가?
AI는 도구이며, 실제 영상이나 음향에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완하는 데에 이미 활용하고 있다. 다만 음악 창작의 본질, 즉 음악 특유의 현장성은 기술로 대체 될 수 없으며 인위적인 음악이 생산될수록 오히려 실황 공연의 가치는 올라갈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상업 음악 일부 영역에선 일정 기능을 대체할 가능성도 있지만, 음악사를 살펴보면 기술 발전은 언제나 기존의 음악을 밀어내기보다 새로운 표현의 지평을 열어 왔다. AI는 실험적인 도구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번 시즌 실내악 시리즈에 AI가 생성한 작품을 포함할 계획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인간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작곡과 해석의 과정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를 실험해 볼 기회다.
우리는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2026/27 상임지휘자 마리 자코 ©Julia Wesely
26/27 시즌부터 새로운 지휘자 마리 자코와 함께하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선임했나?
소수의 단원 그룹을 구성해 교향악단의 예술적 방향과 부합하는 지휘자가 누구인지 논의했다. 초기 후보군은 약 200명에 달했다. 자유롭고 솔직한 의견 교환이 가능하도록 ‘안전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특정 지휘자 이름이 불필요한 소문에 노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태생인 마리 자코(1990~)의 임명은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교향악단이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다. 젊은 지휘자와 함께하는 것은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고 교향악단의 예술적 목표와 콘텐츠를 다시 정의하는 동력이다.
젊은 여성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끌게 된 것인데, 이 선택이 의미하는 바가 있다면?
성별이나 나이를 떠나 예술적 선택이었다. 여성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예외적 사례’가 아닌 ‘현실’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 마리 자코와 우리의 호흡은 매우 자연스럽고, 긴밀하게 형성됐다. 그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지난해 11월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연주였다. ‘노장의 음악’으로 인식되는 작품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풀어냈고, 프랑스적 배경을 지니면서도 독일 시스템 안에서 성장한 마리 자코의 해석은 신선했다. 우리 오케스트라는 과거에 귄터 반트(1912~2002)와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을 최초로 녹음했다는 유산을 가지고 있고, 마리 자코와의 연주는 그 유산 위에 새로운 해석을 더한 작업이었다.
유해리(호른 수석)를 비롯해 다양한 국적의 단원들이 있는 것 같다.
아시아와 유럽, 호주 출신을 포함해 20~25개국의 국적을 지닌 단원들로 구성됐다. 악단은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협력하여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공존의 모델’이다. 다양성은 해석의 폭을 넓히고, 음색에 깊이와 입체감을 더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다.
3월, 쾰른 WDR 심포니의 내한이 예정되어 있다. 평소 한국 클래식 음악 시장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한국 방문 경험은 여러 차례 있다. 서울 주요 공연장은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지역의 공연장 역시 수준이 높다. 공연장 인프라가 한국 클래식 음악 시장을 지탱하는 중요 요소다. 무엇보다 관객의 태도는 인상적이다. 음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반응하고 연주자와의 교감도 적극적으로 즐긴다. 열정과 집중력을 가진 관객이다!
이번 내한에서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다소 상투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정서와 음식을 정말 좋아한다. 사람과 음식 덕분에 언제든 다시 오고 싶은 나라다. 이번 내한에선 처음 방문하는 다수도 다수 포함된다. 새로운 도시와 공연장을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쾰른 WDR 심포니는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음악을 사회에 전달하며, ‘방송교향악단’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들의 아카이브가 과거의 기록이 아닌, 미래 전략을 설계하는 기반이라는 점은 인상 깊다.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형태의 관현악단이 존재한다. 한국의 방송교향악단들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존속이 가능할지를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글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객원교수) 사진 쾰른 WDR 심포니
PERFORMANCE INFORMATION
안드리스 포가/쾰른 WDR 심포니(협연 다니엘 뮐러 쇼트·김서현)
3월 5일 오후 7시 30분 낙동아트센터 콘서트홀
3월 7일 오후 5시 구미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3월 11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슈만 ‘만프레드’ 서곡, 브람스 2중 협주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3월 6일 오후 7시 30분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3월 8일 오후 5시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브람스 2중 협주곡, 브루크너 교향곡 4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