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 바흐 앞에서, 다시 시작하는 시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5월 28일 7: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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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

바흐 앞에서, 다시 시작하는 시간

더하우스콘서트 상주음악가로 활동 중인 그가, 바흐 리사이틀을 앞두고 털어놓은 앞으로의 성장 계획서

 

©Jino Park

 

노부스 콰르텟의 리더로 2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단단한 존재감을 쌓아온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 이미 많은 것을 이뤄낸 연주자처럼 보이지만, 무대 아래에서 만난 그는 “제 커리어는 이제 시작”이라며 소년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올해 3월 시작된 더하우스콘서트 상주음악가 활동부터 리사이틀 투어까지, 그는 ‘노부스 콰르텟의 리더’라는 익숙한 수식어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을 다시 그려가고 있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그와의 대화에서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자부심보다 앞으로 쌓아갈 시간에 대한 기대가 더 짙게 묻어났다.

바흐라는 거대한 산, 나만의 길을 내다

오는 5월, 그는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세 곡(BWV1041·1042· 1043)과 무반주 파르티타 2번 중 ‘샤콘’을 한 무대에 올린다. 협주곡과 독주곡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교차하는 구성이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바흐는 종종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곤 하지만, 김재영은 이번에 조금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정공법을 택하기보다, 지금 자신의 호흡에 맞는 방식으로 바흐에 다가가기로 했다. 무반주 전곡 연주 대신 협주곡 중심의 프로그램을 구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예전부터 바흐를 주제로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했어요. 바이올린으로 바흐를 연주한다고 하면 보통 무반주 전곡을 떠올리는데, 저는 아직 그럴 자신이 없었거든요. 협주곡들을 작은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들려줄 수 있는 공연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무대의 중심에는 ‘샤콘’이 있다. 협주곡 사이에 독주곡을 배치하는 구성은 자칫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어 처음에는 망설였다. “사실 ‘샤콘’ 하나만 딱 떼어 넣는 게 조금 조심스러웠어요.” 하지만 고민은 이내 하나의 장면으로 구체화 됐다. 그는 오케스트라가 물러나고, 무대 한가운데 바이올린 한 대만 남는 순간을 상상했다. “무대가 텅 비고, 바이올린이 홀로 소리를 내는 순간이 굉장히 강렬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싶었어요. 잠깐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느낌이랄까요?”
이번 공연에는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음악감독 김선아)이 함께하고,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4.23/김해)과 이지혜(5.8·9/서울·통영)가 김재영과 차례로 호흡을 맞추며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김재영은 독일 유학 시절부터 바로크 음악의 기법을 가까이 접해왔지만, “거트현이나 바로크 활을 쓰는 것도 욕심은 나지만, 그건 제 영역이 아닌 것 같다”며 자신을 고음악 전문 연주자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현대 악기로 구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바흐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협연자 선정에서도 기준은 분명했다. 오래 쌓아온 신뢰가 우선이었다. “무대에서는 서로를 얼마나 잘 아느냐가 중요해요. 지혜와 영욱이는 함께 있을 때 가장 편하고, 만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친구들이거든요.”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BRANTIST

 

 

 

 

 

 

 

 

자화상으로 그려낸 마흔의 기록

올해 더하우스콘서트 상주음악가로 네 차례 프로그램을 꾸리는 방식도 같은 결 위에 놓여 있다. 2006년 지겐 콰르텟의 리더로 이 무대에 처음 올랐던 그는, 20년이 흐른 지금 같은 곳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무대에 올린다. “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바이올린이고, 그다음이 친구들이더라고요.” 그는 ‘자화상’을 주제로 한 첫 공연(3.16)을 시작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윤은솔·김영욱과 함께하는 ‘바이올린과 오랜 친구들’(6.8), ‘가을에는 브람스’(9.21), 그리고 후배와 제자들이 어우러지는 ‘더 파티’(12.14)까지 한 해의 여정을 직접 그려나간다.
내년은 노부스 콰르텟이 2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베토벤 전곡 연주라는 굵직한 계획도 기다리고 있다. “20주년이라는 상징성에 베토벤까지 겹치니, 우리가 빠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돌이켜 보면 친구들을 정말 잘 만났어요.” 노부스 콰르텟을 이야기할 때 그의 목소리에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함께 묻어났다. 그러면서도 그는 콰르텟의 시간 속에서 미처 돌아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생각도 덧붙였다. “젊은 시절을 콰르텟에 온전히 바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후회는 아니지만,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시간을 쏟았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오랜 시간 앙상블을 해오며 쌓인 시각은 아레테 콰르텟을 비롯한 제자들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가르친 이들이 이제는 독자적인 음악가로 성장한 만큼, ‘제자’라는 이름 아래 두기보다 한 사람의 연주자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스승이란, 앞에서 이끄는 존재라기보다 필요할 때 곁에서 방향을 짚어주는 사람에 가깝다.

 

앙상블과 독주 사이에서 더 넓어짐을 느끼며

김재영은 스스로를 ‘늦게 깨닫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남들이 한 달이면 배우는 것을 자신은 1~2년이 걸려서야 이해하고, 연습하다가도 “왜 이걸 이제야 알지?” 싶은 순간이 적지 않았다고. 시간이 지나며 그는 이 또한 자신의 리듬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자기 안으로 들어와 쌓이고, 늦더라도 완전히 자기 것이 된 소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는 미래는 또렷하다. 50대 후반쯤 좋은 연주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 넓은 공연장을 독주만으로도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존재감을 갖추는 것이다. 시간과 경험, 평판과 신뢰가 함께 쌓여야 가능한 일이지만, 그는 이제야 비로소 그 길이 보인다고 말한다. “제 솔로 커리어는 지금부터가 아닐까 생각해요.” 김재영은 앞으로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시간을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다.
홍예원 기자 사진 목프로덕션

김재영(1985~)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남윤을 사사하고, 뮌헨 국립음대에서 크리스토프 포펜을 사사하며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2007년 노부스 콰르텟을 결성해 2012년 뮌헨 ARD 콩쿠르 2위, 2014년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2022/23 시즌에는 런던 위그모어홀 상주음악가(노부스 콰르텟)로 선정됐으며, 2025년 브람스 현악 4중주 전곡 음반(Aparté)을 발매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김재영 바이올린 리사이틀 ‘BACH’
4월 23일 오후 7시 30분 김해문화의전당(협연 김영욱)
5월 8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협연 이지혜)
5월 9일 오후 5시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협연 이지혜)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BWV1041·바이올린 협주곡 2번 BWV1042·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중 ‘샤콘’ BWV1004·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BWV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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