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상은 ‘변화가 만드는 새로운 균형’

조진주의 THE ART OF PRACTICE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0월 1일 12:00 오전

‘청춘의 아픔’, 그 중심에는 어린 시절 꿈꾸던 ‘서정’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느끼는 황망함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떠들다가도, 이제 막 알기 시작한 세상이 너무 차가워서 섬뜩 놀라면서, 우리는 어른이 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이 아픔이 감당하기 어려워질 때, 우리는 처음으로 ‘따뜻함’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이제껏 지루하던 것들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 ‘청춘’이란 녀석은 우리 곁을 바쁘게 지나가고 있는 것 아닐까.

‘따뜻한’ 이상은의 음악을 만났을 때 나는 한창 방황하고 있었다. 많이 울고, 많이 아팠던 시기에 위로가 되는 것이라고는 서태지의 음악과 서태지 마니아를 통해 접한 많은 음악 정도였다. 십대에 한국을 떠나온 후 한국적인 것은 무조건 촌스럽다고 생각하던 내가 한국적인 문화 특유의 ‘서정’에서 편안함, 그리고 따뜻함을 찾았던 때이기도 하다.

내게 이상은의 음악은 바로 그때의 감성과 맞닿아 있다. 지금은 ‘중2병 걸렸을 때’라며 웃어 넘기지만, 사실 그 시기는 ‘아픔’을 처음 알게 된, 그래서 가장 왕성하게 문화를 소비하던 때다. 이상은이 내놓은 ‘신비체험’(11집)의 몽환에 취해 술도 많이 마셨고, 친구들과 ‘삶은 여행’ ‘어기여디어라’를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남이섬에서 라이브로 듣던 기억은 두고두고 추억할 소중한 순간이었으며, ‘언젠가는’ ‘둥글게’는 지금도 출근길에 듣다 울컥할 정도이니 그녀의 음악은 내 인생의 한 부분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음에 분명하다.

수련의 진화 _개성을 찾는 여정

이전에 말한 대로, 나는 예술가 부모님 밑에서 자란 친구들을 보며 약간의 박탈감을 느낄 때가 있다. 이상은을 만나기 전, 그녀의 아버지가 순수미술을 꿈꾸던 건축가이고 그녀 또한 미술가로 키우고 싶어 해 어린 시절을 정말 아이답게 신나게 놀 수 있게 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이런 ‘자유를 즐기는 여유’야말로 예술가를 부모로 둔 자식이 누리는 특권이며,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니까. 우리는 모두 속박된 채 살아가고 있고,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았을 땐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있게 마련인데, 그들은 일찍이 자유의 특별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무언가 찾아가는 걸 좋아하셨고, 제게도 자유롭게 살라고 하셨어요. 어떤 틀이나 망망대해 안에서 안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권태나 생각의 틀을 계속 깨부수고 찾아가는 사람처럼 말이죠. 초등학교 때는 시골에서 뛰어놀고 반 전체 60명 중 58등으로 졸업해도 전혀 개의치 않으셨어요. 예술이 정신적 노동, 영역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결국 예술은 동심에서 비롯되는데, 절 그렇게 키우시고 미술을 가르쳐주신 것도 고마운 일이죠.”

‘수련’을 주제로 물음을 던지는 것이 꽤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은에겐 반복보다 매번 만들어놓은 틀을 깨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았다. 그녀의 음악에 늘 짙게 배어 있는 ‘초월’ 또한 익숙함과 이별하는 것을 유별나게 여기지 않는 성정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싶었다. 그녀는 ‘떠남’을 수련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 제겐 일하는 과정이 곧 수련이에요. 정답이 없고, 개성을 찾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기에, 저만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이 가장 중요했죠. 정해진 무엇을 반복하는 것과 매번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프로세스를 지속하는 것은 좀 다른 일 같아요.”

클래식 음악은 어떠한 틀 안에서 계속 새로움을 찾아야 하는 장르다. 그 새로움은 꽤 세분화되어 있기에, 내밀한 변화의 정도를 대중이 눈치 채기란 쉽지 않다. 때로는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클래식 음악 연주는 정석만 지키면 되는 비창조적 예술 분야’라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큰 화두인 그들의 입장을 감안할 때, 한편으론 그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고전 작품에 대한 지루함을 상쇄시키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상은처럼 여러 번 자신의 틀을 깨뜨린 아티스트가 지극히 드문 것은, 이 과정이 무척이나 두렵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떻게 자신을 이토록 무너뜨리고 다시 쌓을 수 있는 걸까.


▲ 이상은과의 대화에서 나는 열정을 조금 배제한 무대가 더욱 큰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관념과 행동의 수련 _생각하는 고독, 만남 그리고 이별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그녀의 ‘수련’을 바라봐야 할 것 같았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다른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 보편적 의미의 수련이라면, 이상은에겐 반복되는 변화 속에서 상통하는 가치를 찾는 과정이 수련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다시, 또다시 새로운 것을 발굴하기 위한 자극과 영감을 그녀는 어떻게 찾는 것일까.

“제겐 앨범 하나하나가 전부 만남과 이별이에요. 15집을 완전히 잊고, 이젠 16집이라는 미지의 나라를 향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예술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노동이라는 걸 많은 사람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또 옳고 그르다고 판단해온 것들을 해체시키는 일이나, 사회적으로는 어른스러워야 하는데 음악적으론 아이 같아야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사실 어른의 마음으로 아이인 척하며 예술가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아이를 해방시키는 동시에 어른의 성숙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 스위치를 자유롭게 껐다 켰다 해야 하는 거죠. 참 어려워요.”

성숙과 순수의 공존은 쉽지도, 흔하지도 않다.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동시에 외부의 것을 흡수하는 균형을 찾는 것은 상당한 심리적 혼돈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제 안정기에 들어선 듯했다.

“어릴 때에 비해 지금은 많이 조용해졌어요. 20대 시절, 내 안의 적과 치열하게, 피 터지게 싸웠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예전에는 내면의 적에게 먹히거나, 무의식 상태에 휘말리기도 했어요. 거의 미친 듯한 상태인 적도 있죠. 젊은 예술가 중 바스키야처럼 갑자기 죽은 사람이 많잖아요. 무의식 속, 내면의 어떤 에너지와 싸우다 지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때는 그게 예술적인 것이라 착각도 했지만, 이젠 그런 갈등이 없어지니 오로지 예술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자신의 에너지를 다루고, 작품에만 몰두하는 것이 정말 대단하단 걸 알게 된 거죠. 장인 정신을 갖고 지속적으로 내공을 쌓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에요.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모든 일에는 예술의 경지가 있으니까요. 인생은 각자 내공을 쌓아가는 것이라 생각해요.”

우리는 요절한 예술가들이 그의 짧은 시간 동안 이루지 못한, 미완의 경지에 환상을 갖곤 한다. 모차르트가 10년만 더 살았다면, 커트 코베인이 앨범을 하나만 더 냈다면,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좀 더 일찍 재활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상은의 말을 들으며 예술가 이전에 인간으로서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는 ‘그럼에도 살아남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에게나 인생이란 힘겨운 것이고, 이 힘겨운 상대를 순간순간 극복하는 것에 예술의 진정한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홀로 ‘생각하는 고독’이 중요해요. 멜랑콜리가 아닌,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지성적인, 생각하는 고독 말이죠. 그렇게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다보면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죠. 하지만 여기서 순서를 오해하면 안 돼요. 혼자 있는 것과 외로움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해요. 이를테면 친구들과 있을 때보다 혼자 공부할 때 높은 집중력을 발휘해 좋은 결과가 나오듯, 홀로 작업을 하다 보면 외로워지고 그 가운데 작품이 나오는 것이죠. 그저 감정적으로 외롭다고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에요.”

극적인 변화들을 거쳐온 이상은의 현재 화두는 예술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들이 서로 적절히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대중적인 멜로디와 복합적인 화성의 결합이 모차르트의 가장 큰 힘인 것처럼 말이다. 음악을 공부하면 흔히 복잡하고 긴 화성 진행만이 ‘깊은 음악’이라 여기는 ‘음학’에 빠지기 쉽지만,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가 지닌 근원적인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년 동안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보편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보편성만으로 예술이 성립될 수는 없지만, 예술가에겐 특수성만큼 보편성도 필요해요. 지극히 평범한 것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마음인 거죠. 라디오를 진행하던 어느 날엔 밝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신나는 음악을 틀었는데, ‘지금 지하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하루 종일 햇빛은 못 보겠지만 라디오 음악 덕분에 햇빛을 받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어요.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죠. 이제껏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녀는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이 자신의 균형을 무너뜨리게 놔두기보다, 그것을 끌어안으며 스스로 변화시켜왔다. 이것은 자신을 관찰하고 성찰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녀는 균형을 잡고, 다시 그것을 깨뜨리고, 또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것을 즐길 만큼 내공을 쌓아두고 있었다. 이상은에게 수련이란, 변화를 받아들이고 다시 새로운 균형을 잡는 과정, 그 전체인 것이다. 익숙한 것을 선택하기보다는 매번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아 다시 떠나는 것 또한 그녀가 예술을 대하는 특별한 태도이며, 다시금 열정을 가다듬는 그녀만의 프로세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수련 _감정의 치유를 위한 노래

이상은과 대화하는 도중 몇 번이나 내 생각에 불필요한 힘이 많이 들어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균형이 잡혀 있었고, 자신의 자아보다는 예술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었기에, 모든 것에 대한 표현이 담백했다. 마치 자극적인 음식만 오르던 밥상에서 마주친, 담백한 나물 반찬 같은 느낌이랄까. 이상은은 세월이 흐르면서 가능해진 것이라 말했지만, 사실 그녀의 음악에는 언제나 아픔을 아무렇지 않게, 담담한 어조로 읊조리는 ‘초월’이 담겨 있다. 울부짖고 오열하는 사람보다 울음을 참아내고 웃는 사람이 더 애처롭듯, 처절하게 소리 지르는 음악보다 말끔하고 담백한 그녀의 음색이 마음속 더 깊은 곳으로 들어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표현해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치유할 수는 없어요. 때문에 예술가는 감정의 사치를 누릴 줄 알아야 하죠.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예술가는 상처도 잘 받고, 영혼을 관통하는 듯한 아픔을 오래 느껴요. 그 감정을 저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노래를 만들고 부르다 보니 그걸 듣는 사람들에게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은희경 작가는 작품 하나를 마무리 지을 때면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충분히 생각했구나’ 하고 느낀다고 했다. 이상은 또한 그렇지 않을까. 어떠한 감정이나 화두를 충분히 곱씹은 다음에야 그것을 앨범에 담아내는 그녀 특유의 작업 방식은 진정한 의미의 인간적 성숙과 맞닿아 있다. 아이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보다, 성숙한 예술가로서 그 감정에서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해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스스로의 에너지를 조절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연주를 할 때 스스로의 액션에 도취되기보다 귀를 더욱 쫑긋 세우고 나의 소리를 관찰해야 하듯, 열정을 조금 배제한 무대가 더욱 큰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한다. 음악을 위해 사는 것은 어쩌면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내 마음과 생각을 흘려보내어 텅 빈 상태로 음악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받아낼 큰 그릇이 되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 조진주 사진 심규태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는 한국에서 태어나 예원학교를 수석 입학, 재학 중 인생의 멘토인 폴 켄터를 만나 미국 클리블랜드로 유학을 떠났다. 커티스 음악원을 거쳐 다시 폴 켄터의 문하로 돌아가 클리블랜드 음악원 학사 학위를 마쳤다. 제이미 라레도 교수와 동 학교에서 석사·전문사 과정을 마쳤고, 2014년 세계 3대 콩쿠르인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거리 공연 프로젝트 ‘클래시컬 레볼루션 코리아’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동물을 사랑하고, 아이폰 중독자이며, 자연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TV 보는 것을 음악보다 좋아한다

가수 이상은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받으며 데뷔했으며 ‘사랑할거야’ ‘더딘하루’ ‘언젠가는’ ‘공무도하가’ ‘비밀의 화원’ ‘삶은 여행’ 등 지난 26년간 총 15장의 음반을 발표해왔다. 뉴욕 유학 중 발표한 3집 ‘더딘하루’(1991)를 통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한 그녀는 이후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는 노래들을 발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4년 만의 신작인 15집 ‘lulu’에서 전 수록곡의 작사·작곡뿐 아니라 편곡·녹음까지 직접 하며 도전을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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