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엣 오페라 속 여인의 삶과 사랑_4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월 18일 9:00 오전

줄리엣
오페라 속 여인의 삶과 사랑_4

반대의 선을

사랑의 이름으로 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곡가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줄리엣을 그렸다

로미오와 줄리엣 (프랭크 딕시, 1884)


“아, 저 아가씨는 횃불에게 밝게 빛나는 법을 가르치는구나!
너무 아름답고 귀해서 이 속세에는 과분할 정도인걸.
까마귀 무리 속의 새하얀 비둘기인 양 아가씨는 동무들 사이에서 홀로 돋보이네.
이제까지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고?
내 눈이여, 부정하라!
나는 오늘 밤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는구나!” (로미오)
-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독백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잭 브렘은 1966년 ‘심리적 반발 이론’을 발표했는데, 개인의 자유선택의지가 제한되거나 박탈된 상황일 때, 사람들은 침해받은 자유를 회복하려고 한다는 이론이다. 즉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심리를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대표적인 예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든다. 아예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라는 이론도 있을 정도다. 부모의 반대가 있을 경우 연인 사이의 로맨틱한 감정이 강화된다는 것으로 1972년 미국의 리처드 드리스콜이 발표했다. 사랑은 말리면 말릴수록 더 격렬하게 불탄다는 걸 16세기말부터 셰익스피어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원작은 따로 있다?
원수 집안의 아들인 로미오를 사랑한 대가로 비극적 운명을 맞은 아름다운 소녀 줄리엣의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명작 중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현재까지 영화·뮤지컬 등 많은 장르로 변주됐지만, 아름답고 애틋한 두 어린 연인들의 이야기를 처음 쓴 사람은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1596)보다 65년 전인 1531년, 이탈리아 작가 루이지 다포르토(1485~1529)가 쓴 ‘새로이 발견된 두 고귀한 연인 이야기’라는 소설이 그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소설에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반영됐다고 한다.
1511년 어느 무도회에서 26세의 포르토는 16세의 소녀 루치나 사르보난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의 후견인 지롤라모 사르보난, 포르토의 삼촌 안토니오 사르보난의 사이는앙숙이었다. 웃어른들의 관계로 인해 포르토와 루치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루치나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몇 년 후 전쟁에서 중상을 입은 포르토는 자택에서 요양을 하면서 가문의 반목으로 힘든 사랑을 하는 두 청춘 남녀 이야기를 소재로 소설을 쓴다. 
배경은 근방의 베로나로 설정했지만, 사실 창밖으로 보이는 몬테키오 마조레라는 마을에 있는975년에 지어진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두 성을 보고 이름을 착안한다. 그래서 지금도 몬테키오 마조레에는 ‘줄리엣 성’이라고 불리는 벨라구아르디아 성과 ‘로미오 성’이라고 불리는 카스텔로 델라 빌라가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포르토 생전에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그의사후인 1531년, 익명으로 출간된 이 소설은 포르토의 줄리엣이었던 루치나에게 헌정됐다. 

이탈리아 몬테키오 마조레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성이 있다.

징가렐리, 바카이, 벨리니의 로미오와 줄리엣
포르토의 소설은 나폴리 악파의 대표 주자이자 거의 마지막 주자로 여겨지던 니콜로 안토니오징가렐리(1752~ 1837)에 의해 오페라로 부활했다. 당시 나폴리는 파리와 런던 다음으로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으며 ‘음악의 수도’라고 불릴 만큼 음악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징가렐리의 작품도 전 유럽에서 사랑받았을 정도로 인정받았으며, 그는 벨칸토 오페라의중요한 작곡가인 벨리니·도니체티 등을 제자로 키워냈다. 징가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는 ‘줄리에타와 로메오’라는 타이틀로 1796년 1월 30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단 8일 만에 작곡됐지만 징가렐리의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고 여겨진다. 201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이 오페라가 연주됐는데, 게오르게 페트로우의 지휘로 카운터테너 프랑코 파지올리가 로메오를, 메조소프라노 안 할렌베르크가 줄리에타를 노래했다. 고전 시대에쓰인 색다른 ‘로미오와 줄리엣’을 감상하고 싶다면 유튜브에 당시 실황연주가 음원으로 올려져 있으니 감상하길 권한다.
1825년과 1830년에는 5년 간격으로 ‘로미오와 줄리엣’ 오페라 두 개가 탄생했다. 벨칸토작곡가 니콜라 바카이(1790~1848)와 빈첸초 벨리니(1801~1835)가 그 창조자다. 두 작품 다 셰익스피어가 아닌 포르토의 원작을 바탕으로 대본이 쓰였다. 당대 최고의 대본가였던펠리체 로마니(1788~1865)가 두 작품의 가사를 썼다.
지금은 성악기법으로만 그 이름이 기억되지만 바카이는 나름 당대의 중요한 오페라 작곡가였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성공한 오페라가 바로 ‘줄리에타와 로메오’다. 이 오페라가 성공하자 제작을 위해 건너간 런던에서 성악 교사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그 덕에 지금은 오페라 작곡가보다는 마치 피아노계의 체르니처럼 성악 교습법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벨리니는 당시 다작으로 유명한 작곡가 조반니 파치니가 낸 펑크를 막기 위해 ‘카풀레티가와몬테키가’라는 작품을 가지고 구원투수로 베네치아 극장에 올렸다. 그는 파치니의 공백을 메우는 대신 다른 작곡가들의 세 배나 되는 개런티를 받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전작 ‘해적’을 마치자마자 ‘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 작곡에 착수했다. 스승 징가렐리를 존경했던 벨리니는 타이틀이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제목을 ‘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로 정했다. 
포르토의 원작을 반영한 로마니의 대본에서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우리가 익히 아는 셰익스피어의 두 청소년과는 사뭇 다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가 프랭크 딕시의 그림 속의 로미오라면, 로마니의 로미오는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그림 속의 로미오 모습에 가깝다. 로마니는 로미오가 줄리엣과 비밀리에 사랑에 빠져 장래를 약속했고, 줄리엣의 형제를 죽였다는 전제를 하고 오페라를 시작한다. 로미오는 사신으로 변장해 두 가문의 화해를 제안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결혼시키자고 제안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후 격분한다. 셰익스피어가 줄리엣 아버지의 입을 빌려서 “조용하고 훌륭한 청년”으로 로미오를 묘사한 반면, 로마니의 로미오는 적을 공포에 떨게 하는 무자비한 전사의 모습에 줄리엣에게 야반도주를 강하게 요구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에 대응하는 줄리엣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로미오를 사랑하지만 가족과조국을 쉽게 져버릴 수 없다며 로미오를 달래는 이중창을 부르는데, 셰익스피어의 줄리엣이 보여줬던 금방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하는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유명 서사에서 오페라의 명작으로  
징가렐리와 바카이, 벨리니에 이르기까지 이 작곡가들이 쓴 ‘로미오와 줄리엣’ 오페라들은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바로 로미오 역할이 당대 최고의 메조소프라노들이 사랑하던 ‘바지역할’이었다는 점이다. 징가렐리는 로메오 역을 카스트라토 지롤라모 크레센티니(1762~1846)를 위해 이 역을 썼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카스트라토의 자리는 전설적인 메조소프라노들이 대신 채워나갔다. 
그중에서도 콘트랄토부터 소프라노까지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었던 가수 마리아 말리브란(1808~1836)은 징가렐리와 바카이, 벨리니의 로메오를 즐겨 불렀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미라미데’에서 콘트랄토 역인 아르사체와 소프라노 역인 세미라미데를 다 부르고, 또 같은 작곡가의 오페라 ‘오텔로’에서도 오텔로와 데스데모나 두 역을 모두 부를 정도로 말리브란의 음역은 광활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로시니의 오페라 중 가장 유명한 ‘세비야의 이발사’ 초연때 알마비바 백작을 불렀던 테너 마누엘 가르시아였고, 그녀는 아버지에게 엄하게 음악을 배웠다. 압도적인 가창력과 드라마틱한 연기력으로 전 유럽과 미국에 이르기까지 명성을 떨쳤지만, 강압적인 아버지와의 갈등, 불행한 결혼 생활, 그리고 불과 28세에 삶을 마감한 그녀의 인생은 20세기에 여러 차례 영화화되기도 했다. 
1832년 말리브란은 볼로냐에서 벨리니의 오페라 ‘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의 로메오를 부를 때, 마지막 장면을 바카이의 ‘줄리에타와 로메오’의 마지막 장면으로 대체해서 공연했다. 작곡가들이 뒷목 잡을 만한 일이었지만, 19세기 내내 이 혼합(?) 버전이 빈번하게 공연됐다.심지어 그녀는 바카이에게 2막짜리 원작에 3막을 추가해서 작곡하도록 요청했다. 이 새로운 버전은 1835년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에서 초연됐다.
현재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한 오페라는 프랑스 작곡가 샤를 구노의 작품이다. 1867년 4월 27일 파리에서 초연됐으며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구노는 1841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로마니의 대본을 가지고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오페라를 쓰고자 간단한 스케치를 썼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24년이 지난 후 쥘 바르비에(1825~1901)와 미셸 카레(1822~1872)의 대본으로 작곡을 재개한 구노는 몇 달 만에 작업을 마쳤다. 이 오페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셰익스피어의 버전을 바탕으로 작곡됐고, 구노 특유의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과 화려한 색채 덕분에 프랑스 낭만주의 오페라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오페라로 접하고 싶다면구노의 작품으로 입문을 한 후, 벨리니·바카이·징가렐리 순으로 감상을 권한다. 색다른 매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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