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정열을 가지고 백건우와 협연하는 그의 음악 세계
첫 내한한 지휘자 안토니오 멘데스를 만나고 사흘 뒤인 6월 10일, 서울시향과의 공연을 보았다. 포디엄 위에서 그의 지휘는 오케스트라의 최대치를 끌어올리고자 노력하는 듯했다. 그는 조련보다 조화와 연합을 통해 음악을 증명하고 있었다. 동시에 음악이 연주되는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지휘하는 중간중간 온몸이 실제로 벌겋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포디엄에서 발을 구르며 뛰어오르기도 했다. 리허설 때는 춤도 추었다던데, 어떤 모습일지 충분히 상상이 되고도 남았다.
마침내 모든 연주가 끝나고, 멘데스는 탈진한 모습이었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콘서트홀 곳곳에 흩뿌린 그는 매우 담담한 모습이었다. 며칠 전 인터뷰 때의 말처럼 안토니오 멘데스는 “모든 에너지와 지식과 자신감과 열정을 주는 사람”이자 “이를 통해 관객과 오케스트라 단원과 음악 모두를 ‘하나로’ 연결하는 사람”이었다.
1984년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태어난 지휘자 안토니오 멘데스. 마요르카 음악 무용 콘서바토리에서 피아노·바이올린을 배운 그는, 마드리드 왕립음악원을 거쳐 베를린 예술대와 바이마르 음대에서 본격적으로 지휘를 배우기 시작했다. 2012년 말코 콩쿠르 수상 이후 2013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젊은 지휘자 상’ 최종 후보에 오른 그는 떠오르는 30대 젊은 지휘자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5월 출시된 스코티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슈만·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2015 실황반은 그의 데뷔 앨범이기도 하다. 7월 17일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스페인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내한해 정통 스페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레퍼토리를 선보일 안토니오 멘데스를 서울에서 먼저 만났다.
7월 17일 첫 내한하는 스페인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예술의전당에서 갖는 연주를 기대하고 있다. 투리나와 파야의 작품 등 스페인 특유의 리드미컬한 느낌을 잘 드러내는 프로그램도 인상적이다.
19, 20세기 스페인 음악은 내·외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민속적 영향과 프랑스와의 교류 등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투리나와 파야 모두 파리에서 공부했다. 라벨의 어머니는 스페인 사람이었고, 라벨 또한 스페인과 아주 가까운 프랑스 남부에서 태어났다. 이를 반영한 연주회는 두 축으로 구성된다. 한 축은 스페인적인 리듬과 캐릭터, 개방성, 열정이다. 스페인에 대한 고정관념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스페인의 실제이기도 하다. 다른 축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연결 고리다. 레퍼토리는 총 4개의 작품인데, 먼저 투리나 ‘환상적 춤곡’에서는 스페인의 민속적 느낌이 잘 표현돼 있다.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백건우와 협연하는데, 그의 단단하고 강렬한 연주를 기대하고 있다. 파야는 ‘스페인 정원의 밤’을 파리에서 작곡했는데, 플라멩코가 유명한 안달루시아의 특성을 잘 파악해 썼다. ‘삼각모자’는 작은 마을에서 세 사람이 벌이는 재미난 소동에 관한 작품으로 음악적 색채가 굉장히 다양하다. 투리나와 파야 같은 스페인 정통의 느낌이 물씬 풍긴 작품을 관객에게 들려줄 수 있어서 기쁘다.
오케스트라의 핵심으로 악장, 더블베이스 수석, 오보에 수석, 호른 수석, 팀파니스트 총 5명을 꼽았다.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가 중요하다. 다만 이 다섯 사람이 지휘자와 호흡이 잘 맞는다면, 마치 큰 트럭과도 같은 오케스트라를 쉽게 이끌어나갈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악장은 오케스트라의 리더이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더블베이스 수석은, 지휘자와 비교적 먼 위치에서 더블베이스뿐 아니라 첼로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추는 자리라 중요하다. 오보에 수석은 목관 파트, 호른 수석은 금관 파트에서 가장 중요한 연주자다. 오케스트라 앞에 지휘자가 있다면, 팀파니스트는 오케스트라 뒤에 있는 지휘자와 같다. 지휘자로 인해 음악이 시작되지만 정작 소리는 오케스트라 뒤에서 나온다.
오케스트라를 처음 만나면 단 몇 분 만에 특징을 파악해야 할 텐데, 서울시향은 어땠나?
모든 섹션 간의 조화가 좋은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했다. 모든 연주자가 아주 다재다능하고, 협조적이고, 능력의 100%를 바로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번 공연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함께 연주했는데, 단원들 모두 완벽하게 작곡가가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과거 내가 지휘했던 다른 공연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서울시향과 연주했던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몇 해 전 투르쿠 필하모닉과 함께한 영상으로도 봤다. 몇몇 콩쿠르나 음악회에서 이 작품을 자주 연주해온 것으로 안다.
콘서트는 모두 다르다. 이번 서울시향과의 연주 또한 기존의 공연과는 다르다. 음악은 수많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기에 똑같은 음악은 나올 수가 없다. 같은 날, 같은 오케스트라, 같은 지휘자일지라도 항상 바뀐다. 이것이 클래식 음악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다. 피카소의 그림도,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변하지 않지만 차이콥스키 교향곡은 항상 변한다. 스페인 지휘자가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을 한국 오케스트라와 함께한다는 것. 이것만 봐도 연주회가 이전과는 같지 않을 거란 것을 알 수 있다.
지휘할 때 눈을 감거나 유독 고개를 숙이는 순간이 많은 것 같다. 평소 포디엄 위에서 음악을 감정적으로 즐기는 편인가, 철저히 계획했던 연주를 생각하는가?
지휘봉을 잡으면 음악에 200% 취하게 된다. 기뻐하거나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도 웃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음악의 넓고도 다양한 감정을 전할 수 있다. 결국 지휘자는 주는 사람이다. 계속해서 주고, 또 주고 줘야 한다. 300%를 줄 때 50%를 돌려받을 수 있다. 100%를 받고 싶다면 600%를 줘야 한다. 에너지뿐 아니라 자극, 지식, 자신감을 줘야 오케스트라가 그들의 최고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지휘자로 걸어온 길, 그리고 펼쳐 갈 미래
어린 시절 피아노·바이올린·작곡 등을 배웠는데, 결국 지휘를 최종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악기를 배울 때는 피아노보다 바이올린을 더 좋아했다. 바이올린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주할 기회가 더 많아서였다. 열여섯 살 무렵 TV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매력에 푹 빠졌고 이때부터 지휘를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사이먼 래틀의 말러 교향곡 실연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때 어린 시절 TV 속 주인공이 래틀이라는 것을 알고 무척 감격스러웠다.
어린 시절,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공연장에서 몰래 연주를 관람했다고 들었다.
부끄럽지만, 사실 어린 시절에 한 번도 음악회 티켓 값을 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공연이 시작되기 한참 전 공연장에 들어갔다가 공연이 시작되면 비어 있는 자리로 옮겨 앉아 공연을 감상했다. 한 번은 공연 시작 후에도 빈자리를 찾을 수 없어 결국 공연장 밖에서 기다리다가, 인터미션 후 집에 돌아가는 노신사에게 표를 받아 공연 후반부를 본 적이 있다.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운 음악학도들에게도 비록 몰래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연주 리허설과 공연을 꼭 보라고 하고 싶다. 학생 시절 그렇게 공연을 관람할 수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돼 있을 것이다. 한편 공연 기획자들에게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티켓을 파는 프로모션을 부탁하고 싶다. 이 학생들이 클래식 음악계의 미래이고, 재산이다.
스스로 ‘독일의 아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독일에 대한 애착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출신지인 스페인과 현재 거주지인 독일을 비교했을 때 음악적 차이를 어떻게 느끼나?
스페인 음악은 매우 민속적이고 리드미컬하다. 잠깐 들어도 스페인 정통 감성을 바로 느낄 수 있다. 또 솔직하고 복잡하지 않은 음악이 마치 스페인 사람들의 성격과 닮았다. 독일은 소리, 음향 자체에 민감하다. 독일에서 지휘 공부를 하게 된 이유도 이런 음악적 문화 때문이다. 독일 사람들은 연주뿐 아니라 소리를 변형하는 것에도 아주 뛰어나다. 그래서 내 안에는 스페인의 장점과 독일의 장점이 잘 혼합되어 있다고 생각한다.(웃음)
롤 모델로 삼는 지휘자는 누구인가?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가 지휘하는 모습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그의 모습은 지휘 그 자체다.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역시 롤 모델이다. 4년 전 스위스에서 열린 하이팅크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가 들려준 음악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말코 콩쿠르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학생이었을 때 마드리드와 베를린에서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본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과 영감을 받고 있다.
과거 아바도가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그랬듯, 당신도 한 도시에서 추앙받는 음악가이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바도는 밀라노의 모든 사람에게 음악을 전했다. 학생과 노인, 공장 직원들을 위해서도 연주했다. 나 역시 학교와 병원뿐 아니라 지역 사회를 오가며 모든 사람이 음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오케스트라가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또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예술감독은 오케스트라와 항상 함께할 필요가 있다. 아바도가 그랬듯, 오케스트라에 전념하는 것이 지휘자의 제일 중요한 역할이다. 물리적으로 함께하진 못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단원들에게 항상 함께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강태욱(Workroom K)·서울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