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서혜경, 소리로 듣는 그림 풍경

‘피아노로 그리는 그림’ 음반 발매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그녀의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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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4월 4일 12:04 오전

INTERVIEW

피아니스트 서혜경이 ‘피아노로 그리는 그림’ 앨범 발매와 함께, 그림과 다양한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된 작품들을 가지고 관객들을 찾아간다. 도이치그라모폰 레이블을 통해 발매될 이번 앨범에는 드뷔시의 풍부한 상상력이 그림 같은 색채감으로 입혀진 ‘영상 1집’, 모던 리듬과 화성적 색채의 변이를 보여주는 현대음악 리버만의 ‘가고일’, 전시회장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전람회의 그림’ 등이 수록되어 있다. 작품을 들어보면 서혜경 만의 다채로운 음색과 폭발적인 파워가 만나 한층 더 풍부한 색채로 표현되었다. 특히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서혜경의 시그니처 레퍼토리로, 20대 뉴욕 링컨 센터 데뷔 무대 이후 세계 각국 연주회장에서 연주한 바 있다.

5월 23일 LG아트센터에서는 음반에 수록된 작품들로 리사이틀도 개최된다. 특별히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김준희와의 무대도 준비되어 있다. 4 Hands로 선보이는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과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는 원곡과 다른 색다른 사운드로 선사할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현재 미국에서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서혜경과 이메일 인터뷰를 나눴다.

요즘 미국에서의 일상은 어떤가. 지난 20년 동안의 한국에서의 교직생활을 정리하고 이제 내 가족이 있는 뉴욕으로 돌아와 전문연주자로서의 삶을 만끽하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보람 있고 배우는 것이 많았지만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집중하기 힘들어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살기에는 힘든 면이 많았다. 드디어 많은 시간을 내 연주에 투자할 수 있어서 기쁘다. 가끔은 외롭고 힘든 순간도 있지만 지금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음반을 발매하게 된 과정과 무대에서 음악을 통해 나누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서혜경’하면 러시아 작곡가 스페셜리스트라는 인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다양한 작품에서의 여러 가지 스타일의 해석과 색채를 담은 음반을 내고 싶었다. 다채로운 음색, 무드, 감정 등을 풍성하고 깊이 있게, 그리고 심오한 톤의 연주 스타일을 통해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고 나누고 싶었다. 새로운 피아노 소리를 통해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이자 완성자로 알려진 드뷔시의 작품은 2018년 서거 100주년을 기리는 뜻으로 처음 녹음했다. 인상주의 영향을 받은 그는 가능한 많은 색채를 음악에 도입해 아름다운 음색이 넘쳐흐르는 곡들을 작곡했다. 반면 생존 작곡가인 리버만의 ‘가고일’은 드뷔시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색깔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의 음악은 날카로운 조각처럼 예리하면서도 현대적인 색채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2악장에는 슬픔과 외로움, 악마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에너지가 강렬하다.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은 1985년 링컨센터에서 데뷔할 때 연주한 곡으로 그 후 수많은 연주회에서 연주했고 2번이나 녹음도 했다. 이번 음반 녹음이 3번째인데 이전의 녹음들이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도전했다. 러시아 색채가 물씬 풍기는 스케일이 크고 웅장한 작품으로 다시 연주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뉴욕에서 이처럼 내 음악과 레퍼토리를 계속 연구하며 지낼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이 작품은 무소르그스키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색깔이 독특한 곡으로 표현의 다양함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나만의 음색, 톤, 스타일로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음반 제목이 ‘피아노로 그리는 그림’이다. 이유가 있나. 베토벤의 말처럼 피아노라는 악기에는 모든 오케스트라의 색깔들이 골고루 담겨져 있다. 같은 작품의 같은 악기라도 연주자의 능력에 따라 폭넓은 음색과 다양한 색채를 피아노 소리로 뽑아낼 수가 있는데 이번 음반에서는 서혜경만이 표현할 수 있는 여러 방식으로 피아노로 그린 그림 위에 다양한 음색을 마음껏 입혀보고 싶었다.

음반 녹음 과정은 어땠나. 그래미상을 여러 번 받은 프로듀서, 엔지니어와 함께 작업해 편하게 녹음작업을 했다. 맨해튼 155번가에 120여 년 된 장소인 홀에서 이번 레퍼토리와 어울리는 함부르크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연주했다. 특히 시차적응이나 컨디션 조절 같은 문제에서 벗어나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다.

피아니스트 김준희와 함께 연주한다. 젊은 연주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듯하다.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아티스트다. 재주가 많고 스마트해서 다음 세대를 대표한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한다. 그와는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의 하룻밤’과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스를 함께 연주한다.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의 하룻밤’은 사탄을 왕으로 추대하며 야밤에 모닥불 앞에서 마녀들이 신나게 파티하는 장면을 묘사한 곡이다. 젊은 연주자와의 연주는 늘 행복하다. 내가 20대 때에는 남들보다 레퍼토리를 빨리 넓히고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작품 하나하나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진지해 졌다. 지금은 내 자신의 색깔과 목소리를 끝없이 찾아가는 과정중이다. 테크닉을 연마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주하는 것은 물론 인생의 연륜, 경험, 깊이가 담긴 예술, 나만의 표현을 위해 늘 고민하고 있다. 지금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연주자들을 보면 무척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하지만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길은 멀리 내다보고 끝까지 갈 수 있는 지구력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테크닉 연마와 곡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는 적지 않은 희생도 동반된다. 예술가의 길은 자신과의 외로운 투쟁의 길이다. 어려움이 와도 꿈을 포기하지 말고 높은 곳을 향해 가며 초심을 잃지 말기 바란다.

지금까지 음악 앞에서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음악은 내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늘 내 자신의 색깔과 목소리를 찾기 위해 달려왔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고, 그 안에는 기쁨과 함께 슬픔도 있었다. 그런 경험들이 음악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묻어날 것이라 믿는다. 내가 존경하는 지휘자 네빌 마리너는 연주를 마치고 취침한 후 다음 연주를 앞둔 다음 날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삶의 마지막까지 그렇게 음악 안에 있고 싶다.

연주 이외에 평소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취미나 다른 좋아하는 것들이 궁금하다. 뉴욕의 음악회장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듣고 느끼며 거기에서 영감을 받는다. 자연을 찾아가는 캠핑, 등산과 수영, 산책도 좋아한다. 뉴욕 맨하튼의 구석구석을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자연에서 받는 음악적인 영감은 무척 크다.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좋은 에너지를 받는다.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나 혼자만의 외롭지만 충분한 연구를 한 뒤 선 무대에서 청중과 함께 감동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하다. 사랑하는 가족과 반가운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할 때도 행복함을 느낀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홍콩 필하모닉과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며 미국과 유럽에서 연주회들이 있다. 내 꿈은 여전히 진정한 피아니스트이고 세계의 모든 팬들과 함께 음악을 교감하고 싶다.

글 국지연 기자  사진 스테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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