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MUSIC SCENE 39
세계의 예술경영인을 만나다
동시대를 향한 메트 오페라의 변화와 리더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총감독 피터 겔브

©Paola Kudacki
피터 겔브(1953~)는 2006년부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제16대 총감독을 맡고 있다. 1982년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CAMI) 비디오를 설립해 메트 오페라 TV 시리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프레젠트’ 제작을 총괄했으며,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소니 클래시컬 사장을 지냈다. 재임 기간 중 영화관 생중계(The Met: Live in HD)와 스트리밍 서비스 ‘메트 오페라 온 디맨드’를 도입하며 오페라의 대중화와 디지털 확장에 기여했다.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뉴욕 링컨센터. 그 광장 분수 뒤편에 자리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 오페라)의 거대한 아치형 외관과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마르크 샤갈의 벽화는 음악 애호가라면 한 번쯤 마주했을 상징적인 풍경이다.메트 오페라는 1883년 창단 이후 미국 오페라사의 중심 무대로 자리해 왔다. 푸치니의 ‘토스카’(1901)와 ‘투란도트’(1926)가 이곳에서 미국 초연되었고, 소프라노 홍혜경·박혜상, 베이스 연광철 등 국내 성악가들이 이 무대에서 자신만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메트 오페라는 예술적 전통뿐 아니라 기술 혁신 측면에서도 오페라 산업의 변화를 이끌어왔다. 객석 자막 시스템 ‘메트 타이틀’, 영화관 생중계 ‘The Met: Live in HD’, 스트리밍 서비스 ‘메트 오페라 온 디맨드’ 등은 모두 오페라를 극장 밖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의 연장선에 있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2006년 취임 후 약 20년간 메트 오페라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온 피터 겔브다. 그는 2006년 제16대 총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공연 매니지먼트와 미디어 산업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메트 오페라를 보다 유연하고 동시대적인 문화 플랫폼으로 재구성해왔다.

©Marty Sohl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Jonathan Tichler
메트 오페라라는 거대한 ‘오페라 공장’에서
오페라단에서 맡은 역할은 무엇인가?
기관의 예술적·경영적 방향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이 인터뷰 후에는 차이콥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연출 데보라 워너)의 첫 무대 리허설에 참석할 예정이다. 객석에 임시 작업 공간을 마련해 무대를 확인하면서 동시에 오페라단의 전체 운영을 관리한다. 말 그대로 멀티태스킹이다.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CAMI)와 소니 클래시컬 등을 거쳐 메트 오페라의 수장이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메트 오페라의 안내원으로 시작해 마케팅과 홍보, 국제 투어 운영, 다큐멘터리 제작, 콘서트 프로듀싱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소니 클래시컬 재직 시절에는 첼리스트 요요 마의 크로스오버 음반을 제작했고, 클래식 음악 작곡가와 영화감독을 연결해 영화 ‘타이타닉’ ‘레드 바이올린’ 등의 음악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러한 경험들이 오늘날 오페라단 운영의 기반이 되었다.
오페라단을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은 무엇인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오페라를 즐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페라는 모두를 위한 예술이어야 한다. 지적인 자극을 주면서도 흥미롭고 동시대적인 작품을 통해 새로운 관객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트 오페라는 세계적으로 규모가 큰 예술단체에 속한다. 오페라단의 하루 운영 시스템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메트 오페라는 약 4천 명 규모의 인력과 15개의 노조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무대 기술팀과 조명·의상·소품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동시에 움직이며 하나의 공연을 완성하는 ‘병렬 제작 시스템’ 구조다. 아침에는 전날 공연의 세트를 철수하고 다음 작품 세팅을 진행하는 동시에, 별도 공간에서는 다른 작품의 음악·무대 리허설이 병행된다. 현재는 데보라 콜커(1960~)가 연출과 안무를 맡은 가브리엘라 레나 프랭크(1972~)의 ‘프리다와 디에고의 마지막 꿈’ 리허설이 진행 중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다음 날을 위한 세트 교체와 기술 점검이 이어진다. 사실상 24시간 가동되는 시스템이다.
재임 기간 중 ‘The Met: Live in HD’ 등 관객에게 오페라를 전달하는 방식을 확장하고, 작품의 연출적 요소도 강화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많은 것이 변했지만 메트 오페라는 여전히 ‘위대한 성악가들의 집’이라는 본질을 유지하고 있다. 약 3천8백 석 규모의 극장은 성악가의 음색과 성량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뛰어난 음향을 갖추고 있다. 동시에 연극적 접근을 강화하며 세계적인 연출가들과의 협업을 확대해왔다. 영화감독 출신의 연출가들이 가장 놀라는 부분이 공연의 현장성이다. 공연은 매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고, 무대 위 공기의 흐름 같은 살아 있는 변수들이 연출에 영향을 미친다. 바로 그 점이 오페라를 더욱 매력적인 예술로 만든다.
동시대 문화 담론으로서의 오페라
시즌 레퍼토리는 어떻게 구성되며, 신작 제작을 위해 어떤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
현재 메트 오페라는 2029/30 시즌 계획을 마무리하고 있다. 메트 오페라의 한 시즌은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이어진다. 시즌은 기존 프로덕션과 뉴 프로덕션, 초연 작품으로 구성되며 신작은 준비에만 수년이 걸린다. 예를 들어 마이클 샤본(1963~)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메이슨 베이츠(1977~)의 ‘카발리에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험’(연출 바틀렛 셔)은 대본 작성과 작곡, 워크숍 등을 거치며 약 6년 동안 제작되었다. 신작은 대부분 작곡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메트 오페라는 작곡가와 대본 작가를 연결하고, 작품이 실제 무대에 오르기까지 장기간 지원한다. 케빈 풋츠(1972~)의 ‘디 아워스’(연출 펠림 맥더멋)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카발리에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험’(2025) ©Evan Zimmerman

‘카발리에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험’(2025)의 실제 무대 ©Evan Zimmerman
신작의 성공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단순히 초연 시점이 아니라, 얼마나 자주 공연되는지를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순수’(2026) ©Karen Almond
가장 이상적인 성공은 한 작품이 여러 극장에서 반복적으로 제작되는 경우다. 이번 시즌 공연 중인 카이야 사리아호(1952~ 2023)의 ‘순수’(연출 사이먼 스톤)는 2021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 초연 이후 핀란드 국립오페라, 로열 오페라 하우스, 네덜란드 국립오페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등에서 잇따라 공연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작품이 과연 동시대의 담론을 형성하느냐의 여부다. 설령 한 번의 초연에 그치더라도, 그 작품을 통해 새로운 관객이 오페라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것 역시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동시대 담론을 강조했는데, 최근 사회적 변화를 담아낸 레퍼토리들이 실제 관객 구성의 변화로도 이어졌는가?
팬데믹과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 그리고 미투(Me Too) 운동을 거치며 예술이 담아낼 수 있는 레퍼토리의 폭이 넓어졌다. 메트 오페라 최초의 아프리카계 작곡가 테런스 블랜차드(1962~)의 ‘내 뼛속까지 불을 꺼라’(2021)와 ‘챔피언’(2023) 같은 작품은 새로운 관객층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이는 단순히 다양성을 위한 다양성이 아니라, 그동안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새로운 가능성과 목소리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오페라를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도 눈에 띈다.
메트 오페라는 영화관 생중계 ‘The Met: Live in HD’, SiriusXM 라디오 채널,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통해 오페라의 접근성을 넓혀왔다. 동시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구겐하임 미술관 등 뉴욕의 주요 문화기관과 협업하며 새로운 관객과 만나는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진행 중인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와 디자이너 디에고 리베라 전시가 신작 ‘프리다와 디에고의 마지막 꿈’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프리다와 디에고의 마지막 꿈’(2026) ©Marty Sohl

‘프리다와 디에고의 마지막 꿈’(2026) ©Marty Sohl
최근 메트 오페라의 관객층이 젊어졌다. 이러한 세대교체가 가능했던 배경은 무엇인가?
현재 메트 오페라 관객의 평균 연령은 약 44세로, 2004년과 비교하면 약 20세가량 낮아진 수치다. 젊은 관객층이 증가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팬데믹 이후 기존 고령 관객층이 감소한 영향이 크다. 일부는 세상을 떠났고, 일부는 팬데믹 이후 극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에 소셜미디어 활용과 동시대적인 작품 선택 역시 젊은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오페라는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 단 한 번의 기회만 허락될 수도 있는 예술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완성도 높은 공연을 넘어, 관객이 다시 극장을 찾고 싶게 만드는 강렬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변화 속에서도 지켜야만 하는 예술의 가치
성악가 캐스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스타 성악가와 신진 아티스트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맞추는지도 궁금하다.
메트 오페라는 매우 정교한 캐스팅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중심에는 린드만 영 아티스트 디벨롭먼트 프로그램이 있으며, 이 프로그램에 선발된 성악가들은 작은 역할부터 경험을 쌓아 주역으로 성장한다. 또한, 매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에릭 앤 도미니크 라퐁 콩쿠르를 개최해 유망한 성악가를 직접 발굴하고 있으며, 전담 스카우터들이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새로운 인재를 찾는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스타 성악가와 신진 아티스트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음악감독인 야닉 네제 세갱과의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음악감독은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수준에 대한 책임을 지는 동시에 현재와 미래 시즌의 예술적 방향을 함께 논의하는 핵심 파트너다. 직접 지휘할 작품을 선택하고, 신작 위촉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최종 캐스팅 권한 역시 갖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최고의 오페라를 만들겠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앞으로 AI와 디지털 기술이 공연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가?
녹음과 디지털 콘텐츠 영역에서는 이미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오페라를 부정적으로 언급한 이후, 소셜미디어에서는 그가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마지막 아리아를 부르는 영상이 확산된 적이 있었다. 이는 AI 기술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다. 다만 AI가 실제 무대에 서는 성악가와 지휘자를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공연예술은 매 순간 변화하는 현장성과 인간의 존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술 변화 속에서 공연예술의 고유한 가치가 더욱 강조될 수도 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2026) ©Karen Almond
메트 오페라가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비결은 무엇인가?
음악과 연극이 완벽하게 결합되어야 한다. 이번 시즌 새롭게 선보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는 소프라노 리세 다비드센과 테너 마이클 스파이어스 등 최정상급 성악가들이 출연했으며, 이번 작품으로 메트 오페라에 데뷔한 연출가 유발 샤론과 세트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의 연극적 접근이 더해졌다. 메트 오페라는 이러한 협업을 통해 연극적 접근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변화시키고자 한다.
예술적 완성도를 넘어, 오늘날 오페라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예술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키며 문명적 가치를 이어왔다. ‘피가로의 결혼’은 계급 불평등을, ‘피델리오’는 억압과 독재에 대한 저항을 다룬다. 또한 ‘카발리에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험’은 파시즘에 맞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들은 동시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관객이 현실을 성찰하도록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 세계가 점점 더 불안정하고 비민주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상황 속에서 오페라와 공연예술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관객이 현실을 성찰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메트 오페라는 현재 제작비 상승과 후원 구조 변화, 팬데믹 이후의 회복 등 여러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앞으로의 관건은 단순히 비용을 절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메트 오페라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새로운 시대의 관객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기술과 환경, 사회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자신을 안정시키고 성찰하게 만드는 예술적 경험을 더욱 필요로 한다. 오페라는 인간과 사회를 비추며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살아 있는 예술이다. 앞으로 피터 겔브가 이 거대한 기관을 어떤 방식으로 조율하며 새로운 균형점을 만들어갈지 기대해 본다.
글 박선민(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객원교수) 사진 메트 오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