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끝은 시작의 또 다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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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6월 3일 9:00 오전

INTERVIEW

숫자 12와 15. 올해 리처드 용재 오닐과 함께하는 두 개의 숫자다. 이 숫자의 의미를 찾아 그와 마주했다

 

 

열둘, 디토와 함께한 시간

어느덧 12년이다. 리처드 용재 오닐이 앙상블 디토와 함께한 시간이다. 첫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내게 가장 소중한 음악을 나누기 위해’ 앙상블 디토를 시작했고, 그의 이런 소망을 담은 실내악 프로젝트는 2009년부터 디토 페스티벌로 발전하며 매년 새로운 주제로 찾아왔다. 젊은 연주자와 젊은 관객의 만남. 디토 페스티벌이 클래식 음악계에 가져온 효과는 대단했다. ‘클래식 음악계 아이돌’이란 수식어와 함께 너무 상업적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클래식 음악, 그것도 관심이 적었던 실내악 분야에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젊은 관객층에 어필하며 공연장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는 그들의 분명한 성과였다. 그리고 이런 성과는 2008/2009년 예술의전당 유료 관객 1위, 누적 100회를 넘는 국내 투어, 도교·오사카·상하이 등으로의 해외 진출이 뒷받침했다.

얼마 전, 음악감독으로 앙상블 디토와 페스티벌을 이끌어 왔던 리처드 용재 오닐이 아쉬운 소식을 전해왔다. 바로 올해가 디토 페스티벌의 마지막 시즌이라는 것. 그는 그렇게 12년을 함께 해온 디토와 이별을 앞두고 있다.

“무언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죠. 디토도 이제 그 여정을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우리가 이룬 것들을 축하하고, 이제는 미래를 향해 갈 시간입니다.”

디토의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은 덤덤했다.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디토가 이루었던 성과와 이를 통해 얻었던 경험에 더 무게를 두고, 그는 말을 이어갔다.

“앙상블 디토를 시작한 2007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며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실감합니다. 시작 당시만 해도 실내악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었죠. 그동안 좋은 프로젝트를 통해 클래식 음악은 물론 실내악 음악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던 것 같아 기쁩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것이 배움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실수를 통한 배움도 많았고요.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한국의 시간 속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페스티벌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그의 말처럼 디토 앙상블과 페스티벌은 실내악 음악의 대중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출중한 실력에 젊고 멋진 아티스트들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니!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디토 페스티벌의 기획은 10대, 20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대중문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팬덤 문화를 클래식 음악계로 가져왔다.

“사실 팬덤은 언제나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관심은 주로 솔로 연주자를 향했었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디토의 팬덤 현상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사람들을 공연장으로 이끄는 전략 중 하나는 바로 유명 아티스트에 있습니다. 홍보에 유용할 수도 있지만 위험한 방법이기도 하죠. 팝 스타의 공연이라면 괜찮겠지만, 클래식 음악에서는 다릅니다. 여기에서 주인공은 작곡가와 그 작품이기 때문이죠. 연주자의 역할은 좋은 음악을 만들어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에 있을 뿐입니다. 때때로 많은 무대가 잘못된 주인공을 만든다고 느낍니다. 궁극적으로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음악인데 말이죠. 감사하게도 해를 거듭하며 디토 페스티벌에 연주자를 보러오는 관객보다 공연 자체를 즐기러 오는 관객이 점차 많아짐을 느꼈습니다.”

디토는 계속해서 새로움을 더해갔다. 젊은 신예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한편, 중견 연주자와의 콜라보 무대도 선보였고, 새로운 레퍼토리를 연주하며 대중의 인기에 취해 안주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모든 공연이 소중하지만, 중견 연주자들과 만들었던 무대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기돈 크레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함께하며 그들의 꺼지지 않는 열정을 직접 느낄 수 있었죠. 임동혁과의 첫 만남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고, 이후 좋은 친구가 되어 많은 연주를 함께했죠. 일본에서 그와 함께한 연주가 전석 매진됐던 기억이 납니다. 프로그램적인 면에서는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연주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이제 마지막 시즌만이 남았다. 6월 12일부터 29일까지 예술의전당과 고양아람누리를 오가며 열리는 디토 페스티벌의 마지막 주제는 ‘매직 오브 디토(Magic of DITTO)’, 마법 같았던 지난 순간들을 담았다.

“이번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디토 연대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즌을 기념하며 이전에 선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레퍼토리인 슈만 피아노 5중주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새로이 합류한 피아니스트인 조지 리와 함께죠. 그는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에 러브콜을 받으며 많은 연주를 이어가고 있는 신예로 가는 곳마다 큰 사랑을 받는 연주자입니다. 나머지 프로그램에는 디토의 여정과 기억을 담았습니다. 제목처럼 디토의 하이라이트 음악을 엮어낸 ‘디토 연대기’입니다.”

 

열다섯, 또 다른 시작

시즌 1(2007년) ©Woo Ryong Chae

올해는 리처드 용재 오닐의 국내 데뷔 15주년이기도 하다. 이를 축하하기 위한 첫 번째 무대로 그가 멤버로 있는 에네스 콰르텟이 내한(4월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했다.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는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제 진정한 스타죠. 테크닉과 음악성, 모든 것을 갖추었음에도 항상 겸손하며 높은 가치를 향해 계속 노력하는 모습을 보자면, 저 또한 자신에게 엄격해집니다.”

지난 2016년, 에네스 콰르텟이 나흘에 걸쳐 선보인 베토벤 현악 4중주 전곡 연주는 아직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여섯 번의 공연은 모두 전석 매진을 기록했었다.

시즌 3(2009년) ©Sangwook Lee

“베토벤 전곡 사이클은 제 음악 여정에 큰 의미를 주었습니다. 베토벤이 그의 삶 속에서 겪었던 고통과 희생 등 다양한 드라마를 알아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순간들 또한 즐거웠죠. 콰르텟 멤버들과 종종 게임을 하는데, 마지막에 어떤 음악가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게임입니다. 오직 서른 명만 태울 수 있는 배가 있고, 여기에 오른 작곡가와 그들의 음악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태우고 가던 배의 바닥에 물이 새며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한 명씩 희생시켜야 하고, 마지막 한 사람만 구할 수 있죠. 이 게임의 끝엔 항상 바흐와 베토벤이 남는데, 제 선택은 대부분 바흐였습니다. 음악에 있어 그는 신과 같은 존재이니까요. 하지만 베토벤 사이클 이후에는 마지막 선택이 베토벤으로 바뀌었습니다.(웃음)”

시즌 6(2012년) ©Sangwook Lee

그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제임스와 하는 또 다른 게임이 있습니다. ‘만약 J.S. 바흐를 만날 수 있다면, 그를 위해 어떤 다섯 작품을 연주하겠는가?’에 답하는 거죠. 모차르트 교향곡 ‘주피터’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스트라빈스키나 쇤베르크, 슈만 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바흐는 음악에 새로운 역사를 쓴 사람이기 때문에 쇤베르크나 스트라빈스키처럼 아주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음악에 새로운 체계나 변화를 가져온 사람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리처드 용재 오닐의 국내 데뷔 15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은 계속 이어진다. 그 두 번째는 바로 디토 페스티벌에서 선보일 피아니스트 제레미 덴크와의 듀오 무대다.

“제 아주 오랜 친구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인 제레미는 지성과 감성을 모두 겸비한 음악가입니다. ‘맥아더 지니어스 펠로우십’을 받았을 정도로 천재적인 사람이죠. 그의 음악적 해석은 굉장히 다른 수준을 보여줍니다. 그와 함께 연주할 때면 다른 우주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죠. 이번에 함께할 무대에서는 ‘환상곡(Fantasia)’을 주제로 바흐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슈만 ‘비올라 환상 소곡집’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이야기 그림책’등을 연주합니다.”

시즌 12(2018년)

12와 15, 이 숫자를 마주한 그는 이제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한다.

“다시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돌아와 생각해봅니다. 삶을 살아가며 흐름에 따라 흘려보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용기를 가지고 한 걸음 나아가는 것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운 마음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을 놓치게 되죠. 도전하는 것에서 얻는 즐거움 또한 삶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직 살아있고, 여전히 무대에 오르기 위해 연습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알 수 없지만, 삶이 준 선물을 즐기며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향해 가려 합니다.”

이미라 기자 사진 크레디아

 

2019 디토 페스티벌

6월 12~29일 예술의전당·고양아람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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